이런 저런 일들이 지나면서 어느덧 미국 진출 첫해가 지나고 있었다. YJ와 두 명으로 시작했던 회사도 어느덧 8명 정도로 늘어났고 2007년에 런칭하기 위한 게임도 어느 정도 결정된 상태였다. 12월중순 경 2006년 잠정 매출을 뽑아 보았는데 그 금액이 자그마치1,200,000 불이었다. 게다가 사업 첫해에 15%가넘는 흑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가 머물고 있는 iPark의 소장님과 직원분들에게 PT를 했더니 iPark 사상 입주 첫해부터 흑자내는 회사는 거의 처음이라고 말씀 해주셨다.그런 말을 듣고 겉으로는 표현을 못했지만 내심 기분이 많이 좋았다. 내가 좌충우돌하며 시작한미국 사업이 결코 헛된 일만은 아니고 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향도 틀리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벅찬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달랑 20,000불을 들고 미국에 온 내가 사업 첫해부터 가지고온 돈보다 60배가 넘는 매출을 올리게 된 것이다. 좋은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사업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이런 기분 좋은 느낌을 즐기면서 미국생활 첫해를 넘기고 있었다.
- 2009/11/1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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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하다 보면 유저로 부터 다양한 메일과 질문을받게 된다. 때로는 좋은 게임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 라는 메일도 있지만 게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악플이 많지 않고 합리적인 요구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있는 나에게 YJ가 급한 말투로 메시지를보내왔다.
“사장님! FBI에 신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왜 무슨 큰일이라도 난거야?”
“유저에게 메일이왔는데 총을 들고 와서 쏘겠다는데요? 이거 위험한 것이니 FBI에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단 메일을 포워딩해줘봐.”
YJ가 보내온 메일에는우리가 자기를 속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의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속은이유가 아이템을 가지지 못해서라는 둥 나는 게임을 너무 좋아한다는 둥 아이템 하나만 주면 없던 일로 하겠다는 둥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는 개발팀에게 메일을 보낸 유저의 위치를 파악해줄 것을 부탁했고 그 유저는 미국이 아닌 유럽의 한 나라에서접속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유럽에서 미국까지 총 들고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우리를 쏠리는 전혀 없었다. YJ에게도 그 유저는 유럽 유저이고 괜히 보낸 메일일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겉으로는웃으며 당당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나도 꽤나 떨렸던 사건이었다.
- 2009/11/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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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샷온라인’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만일 우리가 만든 게임뿐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개발한 좋은 게임들을 이곳으로 가지고 와서 서비스를 한다면 미국의 성장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을 가지고 오는 것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게임을 하나의 아이디만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고 결제도 한군데서 이뤄질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게임포털형 플랫폼이 일반적이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라 개발에 온네트 본사의 개발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만 했다.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포털의 이름도 정해야 했다. YJ와 함께 이런저런 이름들을 많이 검색해보았지만 홈페이지 주소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선점되어 있는 상태라 좋은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뭔가 신선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Campus’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Campus’하면 한국에선 학교가 더 많이 떠오르지만 이곳 미국에선 Microsoft의 사무실도 캠퍼스라고 불리고 물론 대학교 같은 곳도 캠퍼스라고 불린다. 게임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gamescampus’라는 이름을 생각하고 검색을 해봤더니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름이었다. 나는 바로 ‘gamescampus.com’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하고우리 포털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름을 정하고 4개월후쯤, 샷온라인과 처음 계약을 했던 외부 게임인 ‘Xiah’를 가지고 작지만 포털의 모습을 갖춘 GamesCampus.com을 런칭했다.

- 2009/11/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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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도 8명으로 늘어나고직원들의 이것저것을 신경써야 할 시점이 왔다. 물론 우리 회사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이기 때문에 특별히출퇴근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독 한 미국직원이 며칠째 약속된 출근 시간보다 1시간 혹은 2시간씩늦게 출근하는 것이다. 그날도 11시 30분쯤 출근하는 그 직원을 보면서 오늘은 단단히 한 마디 해야겠다는 맘을 먹었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자니 내 속이 더 터질 꺼 같아서 MSN으로 하기로 맘을 먹었다.
“Hey, what timeis it now?”
“Hi Kevin, Hmm..It’s 11:30am.”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하고 싶었던 말은 “도대체 지금 몇 신데 출근을 하는 거에요?”였는데내 짧은 영어실력에 곧이 곧대로 그냥 “What time is it now?”라고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정말 지금 몇 시인지 궁금해 하는 줄 알고 “It’s11:30am”이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아, 정말답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밖에 표현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영어인가보다.
- 2009/11/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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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샷온라인 서비스가 진행되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날 불쑥 YJ가 편지를 하나 받았다면서 보여준다. 그 편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저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매우 밝고 또 골프도 매우 좋아했던 녀석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봤더니 희귀한 병 중 하나인 ‘루게릭’ 병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그 날부터 동생의 몸은 점점 말이 듣질 않고 겨우 발가락만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몸 상태가 나빠짐에 따라 동생의 신경도 더욱 더 날카로워지기만 했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골프를 못했으니 더더욱 그랬겠지요. 그러던 동생에게‘샷온라인’을 소개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둡기만 했던 동생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고 매일 샷온라인을 즐기면서 건강했을 때 느꼈던 골프와 비슷해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도 했습니다. 이미 동생은 게임 내에서도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더라구요. 그러던동생이 어제 샷온라인을 하면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동생이 이 세상을 떠난 것이 매우 슬프지만, 다행히 여러분 덕분에 동생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좋은 게임을 만들어준 여러분께 동생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메일을 드립니다. 아 제 동생의 아이디는 greenman입니다.”
믿기 힘든 메일이었다. 우리는처음에 그냥 어디서 오는 행운의 편지 이겠거니 생각하고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며칠후 포럼에서는 더욱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greenman을 추모하는 글들이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었다. 정말 좋은 친구였다고. 하늘 나라에 가서도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게다가 같은 길드원들은그를 추모하는 자체 대회도 개최하고 있었다. 길드 홈페이지를 방문해본 우리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홈페이지 전체가 greenman을 추모하는 글들과 그를 기리는 대회소식으로 가득했다.
그때서야 우리는 몇 주 전 받은 편지가 거짓이 아닌 줄 알게되었다. 가슴 한 켠이 뻐근해졌다.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자게임을 만들었고 그 것을 전 세계에 서비스를 한 것 뿐인데 이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내가 만든 게임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매우 보람차고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찡한 감동이 느껴졌다.
우리는 당장 greenman을기리는 대회를 샷온라인 전체 회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우리 홈페이지에서 공식적으로 ‘Greenmanmemorial Tournament’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많은 유저가 대회에참가했고 우리는 수익의 일부를 모아서 루게릭 병 재단에 그의 이름으로 기부를 했다. 그 때부터 우리는매 해 ‘Greenman memorial Tounament’를 개최하며 그를 기리고 있다.


